저 너머 어딘가 #4. 처음 또 처음
백두사이다
작성일 17.09.16 00:46
#4. 처음 또 처음
30분후 우린 거짓말처럼 가까운 모텔에 다다랐다.
'쉬고 가실건가요?'
어떡할까?
뭘 어떡해, 자고 가야지.
자고 갈께요.
'네, X만원입니다.'
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.
어색어색.
삐삑
방문이 열렸다.
그 때 였다.
미선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.
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입술을 포갠 채 옷 하나하나 벗어가며 침대로 향했다.
그리곤 늘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었다.
단 한 마디 말도 없이,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듯이.
그 뜨거운 시간이 지나자 급 쑥쓰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.
야, 뭘 그렇게 봐.
아까 제대로 못 봤어.
뭐야, 그렇게 열심히 봤으면서.
아냐, 아깐 정신없이 해서 제대로 못 봤다니까.
넌 현자 타임 없어?
현자타임? 너 그런 말도 알아?
우리집에 인터넷 깔려있거든.
정말 못말린다.
어땠어?
뭐가?
나랑 하고 나서 어땠냐고? 좋았어?
당연히 좋지, 생각지도 못했는데.
그치? 사실 너 좀 쑥맥 같아서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봤어. 근데 금방 분위기 타더라.
그런 상황에서 흥분 안 할 남자가 어딨냐? 영화에서처럼 진짜 격정적으로 덤비는데.
너도 은근 바랬구나?
솔직히 영화보면서 한 번쯤 저렇게 해보고 싶단 생각했었는데 진짜 좋네. 큭큭.
내가 말했잖아, 나랑 처음으로 해볼게 많다고.
아, 그렇네. 나이트에서 만나서 밥 먹은 것도 또 사랑을 나눈것도 처음인데.
혼자 순진한 척 말하지마, 그런 말은 안 믿어.
티 났어?
완전 티났거든.
난 좀 씻어야겠다, 넌?
나 뭐?
같이 씻을래?
야, 아서라. 나 그 정도로 오픈한 건 아니니까.
넌 진짜 신기해.
뭐가?
어떤 때는 정말 카리스마 넘치다가도 어느 때 보면 정말 애 같다고 해야하나?
애?
아니 뭐 다큰 애는 앤데,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.
됐다, 오바하지 마라. 누나한테.
아, 네. 이모.
아, 뭐야.
나 우선 씻을께, 쉬고 있어.
알겠어.
샤워를 하고 오니 그녀는 어느새 옷을 다 입고 있었다.
어, 안자고 가?
당연하지, 집 있는데 어떻게 여기서 자고가냐?
그럼 왜 아까 방 잡을 때 자고 간다고 했어?
대실이라고 하면 뭔가 사랑만 나누러 온 사람 같잖아, 선수같이.
뭐야, 그 이상한 논리는.
넌 여기서 푹 자, 내가 내일 기분이 좋으면 아침에 다시 올께.
아침에? 기분 좋으면?
응, 아침에.
그냥 자고 가면 안돼?
어떻게 한 번 보고 같이 잠자리에 드냐.
아니 우리 방금 섹스도.
그거랑 잠자는 건 엄연히 다른거야.
뭐가?
한 이불 덮는다는건 평생 같이할 때 하는거라고.
지금은?
엔조이지. 나도 좋고, 너도 좋고.
완전 헷갈린다.
헷갈릴 것 없어, 오늘은 그 시작일 뿐이니까.
너도 여친하고 해보고 싶은 로망 있으면 생각해둬, 각자 로망을 펼쳐보자고.
진짜?
응, 우리가 서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.
나 좀 애매하다.
너 섹파 원하지 않아?
아니 그게 뭔가 좀 당황스러워서.
쿨하게 가자.
아니 이게 쿨한건가? 내가 생각한 거랑 좀 다른데.
뭐가?
아니, 난 너랑 사랑을 나누긴 했어도 진짜 편하고 좋아서 한 느낌이란말이야.
나도 좋아서 했어, 너 괜찮아서.
난 잘 모르겠다, 이 상황이.
너 지금 현자타임 와서 그런거고 어쨌든 잘자.
내일 다시 연락하자. 10시 전에 안오면 그냥 너 볼일 보고.
그래, 그럼 잘가.
안녕.
그녀는 그렇게 모텔을 나섰고, 난 그 방에서 혼자 멀뚱히 몇 시간 전의 만남을 곱씹었다.
할 땐 좋았는데, 급격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.
내가 원한건 인스턴트 사랑이긴 했지만 막상하고나니 공허하고 허전했다.
더욱이 미선이가 말한 사랑과 별개인 한 이불 덮고 잔다는 말이 머릿 속을 멤돌았다.
내가 금사빠였나?
침대 위에서 하릴 없이 생각하다 에로영화를 보며 내 자신을 위로하고 잠을 청했다.
신기했다, 모텔에 둘이 와서 혼자 자는 경험.
이 또한 처음이었다.
4부 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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